달빛 무지개..fly me to the moon
by 찌질한 카페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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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지음 / 씨네21
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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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씨네21북스)

읽은 기간 : 2012. 1. 1 ~ 1. 3


tEXt 中 :

1.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오랜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 우리의 꿈이 이미 실현되어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의 모습은 한 몽상가의 '비전' 속에서 미리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투쟁하는 세대의 집단적 꿈속에서 '기억'으로 뒤늦게 현현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난쟁이는 거울의 반사를 이용해 등을 구부리고 책상 속에 숨어야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은밀히 그 조종을 받는 터키 인형이 되어야 한다.

2. 과거에 혁명은 진리를 소지한 전위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외부로부터 주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의 무오류'라는 터무니없는 이론과 숙청의 드라마라는 잔혹한 실천을 낳았다. 그런 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 더 이상 현대의 정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를 바꾸려는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졌어도, 그들과 내가 같이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을 상대화해야 비로소 타인과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이 가능해야 연대도 가능하고, 연대가 가능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급진적인 것은 사태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radicalism radis=뿌리) 급진적으로 되려면 무엇보다 제 뿌리로 돌아가, 제 신념의 토대를 힘껏 흔들어보아야 한다. 오늘날 사회를 바꾸는 데에 필요한 것은 확신에 가득찬 혁명가가 아니라, 회의로 번민하는 아이러니스트다.

3. '새 인터내셔널' 이라는 데리다의 정치적 대안 역시 그의 철학적 기획 못지 않게 급진적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란, "마르크스,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정신 중의 적어도 한 가지 요소에 공감하는 이들 사이에 동맹", 즉 "위상도, 좌표도, 당도, 나라도, 민족공동체도, 시민권, 특정 계급에 함께 속하는 일도 없는 비시간적 연결이다." 비록 정당이나 노동자 인터내셔널과 같은 제도적 형태를 취하지는 않지만, 이 동맹은 국제법의 상태, 국가와 민족의 개념 등을 비판하는 일에 연대하면서 마르크스의 비판을 새로이 하고, 급진화할 것이다.
계급에 속하지도, 정당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는 이 동맹이 어떤 이들에게는 '유령'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가령 촛불시민들을 바라보는 전통 좌파의 시각을 생각해보라. 흥미롭게도 우익들 역시 이 시각을 공유한다.) 그 동맹은 부재하나, 동시엔 현재한다. 실제로 그것은 유령스럽다spectral. 데리다 역시 그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이 유령 앞에서 퇴마의식을 벌이려는 이에게는 햄릿의 말을 들려주는 게 어떨까?
"이 귀신을 귀한 손님으로 취급해서 환영해주세. 이 사람아. 세상에는 우리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허다하게 있다네."

4. 영감이 종종 엉뚱한 데서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에서 "운율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은유 만드는 법은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은유란 서로 다른 두 사물 사이에서 급작스레 유사성을 발견하는 능력인데, 은유가 효과적이려면 그 두 사물이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정보이론에서는 아마 이를 '정보량의 확장' 이라 부를 것이다. 논리에는 '비약'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논리는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이때 정보량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우연, 세렌디피티다.



5. '문화비평'이라는 이름의 글쓰기는 결국 말 없는 사물을 읽는 작업이다. 그것은 말없는 사물에 인간의 목소리를 주어 그것들이 스스로 자신을 말함에 이르게 해야 한다. 바벨의 비평은 사물을 제 편의대로 재단하나, 아담의 비평은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언어적 본질을 온전히 읽어낸다. 구제비평은 사물을 명명하던 아담의 작업을 연장하는 일이며, 그로써 신을 도와 신의 창조사역을 완성하는 길이다. 위기의 시대에 세계는 구원을 기다리는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예민한 비평가의 귀에는 사물들의 소리 없는 구원의 요청에 들릴 것이다.




ex Libris :

1. 애초에 어느 곳에도 없는 유토피아의 부재를 슬퍼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져 있다면 그것은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수많은 이들의 자기 희생의 결과이리라. 그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그들에겐 우리의 현실이 좀 더 유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이며 그래서 그들에게 감사해야 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에 살아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전제 조건, 우리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자신 있어?

2. 문제는 공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따뜻해야 한다.

문제는 연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문제는 자기 회의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데카르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공감도 연대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말 마지막 문제는 “타자와의 인정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존재”, 바로 당신과 나, 속물 그 자체다.

3. 그런 말이 유행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걸음들이 만들어 낸 발자국이 이어질 때 그 모습은 비록 카오스적이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코스모스의 뿌리가 아닐까? 프랙탈 눈송이처럼......

4. 그래서 나는 고전 소설을 좋아한다. 판타지를 좋아하고, SF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재즈를 좋아하고, 크로스오버를 좋아하고, 인디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이.상.한. 상상에 빠지고 이.상.한 글을 쓴다.

5. 작가가 계속 그 예민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래야 머리 싸매면서 뇌세포 청소하듯 읽을 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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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질한 카페 좌파 | 2012/01/04 02:48 | ex Libri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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